만들어진 현실 書評

만들어진 현실

 

“옛날에는 호남 사람이 영남에 있는 고속도로 휴게소에 (차)간판차고 들어오질 못했어.”

 

하동사람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전라도 사람이 휴게소에 들어왔다가는 해코지를 당한다는 말이다. 별다른 이유는 언급하지 않으셨다. 막연한 적개심은 이렇게 생겨났다. 막연했던 마음이 확신으로 바뀌는 건 시간문제였다. 머리 크고 접한 신문과 방송은 지역주의의 근거를 제공했다. 논리는 없었다. 다만 현존하는 지역주의를 비판하고 타파해야 한다고만 떠들어댔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저서『만들어진 현실』에서 ‘지역주의’에 대한 위와 같은 편견을 고찰한다. 그는 지역주의에 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을 지적하며 논의를 시작한다.

첫째, 대부분의 유권자는 지역주의에 이끌려 투표한다.

둘째, 지역을 둘러싼 편견은 옛날, 즉 근대 이전 전통 사회에서부터 존재 했으며, 이후에도 계속 강화되었다.

셋째, 지역주의의 중심 내용은 영남과 호남 사이의 지역 갈등이다.

넷째, 지역주의와 지역 구도의 고착화 정도는 매우 심하다. 선거를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이를 극복하기 어렵다.

다섯째, 지역주의 때문에 정치발전이 안 되고 있다.

여섯째, 지역주의는 망국적인 고질병이다. 개헌을 통한 권력 구조 개편이나 선거제도의 변화와 같이 게임의 규칙을 바꾸거나, 정치 지도자들의 결단과 같이 뭔가 강한 외재적 힘의 개입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

 

우리는 “호남 사람들은 믿을게 못 된다.”고 흔히 생각한다. 어디서 이런 말이 나왔을까? 해방 후 급격한 경제 발전과 동시에 수많은 농촌 인구가 도시로 유입됐다. 이에 따라 영남 사람, 호남 사람 할 것 없이 지방 사람들이 서울에 넘쳐났다. 토박이들은 “어디 사람은 어떻다”고 주관을 떠들어대고, 이주민들 역시 “서울 사람은 약삭빠르다”고 떠들어댔다. 한 마디로 지역 편견은 너나할 것 없이 있어왔다는 것이다. 호남인만 가지고 있던 차별은 아니었던 것 같다. 60년대 까지만 해도 그렇게 문제 될 일은 아니었다는 거다.

이에 저자는 “지역주의 때문에 큰일이라는 해석이 어떻게 한국 정치를 지배하게 되었나 하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는 문제가 지역주의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주의 담론을 만들어 내고 이용하는 권력에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지역주의를 악용한 권력은 누구일까? 그는 1971년 선거 직후를 주목한다. 박정희는 경제 발전의 성과를 위시하여 권의주의 정권의 연장에 성공했다. 주목할 변화는 하나 더 있었다. 민주화를 위한 시민의식의 성숙이다. 71년 선거에서 김대중이 턱밑까지 표차를 줄이자 박정희는 긴장했다. 본격적으로 김대중에게 빨간 색을 입히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반공의 기치를 내세우던 박정희와 달리 평화 통일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 화근이었다. 김대중을 용공으로 몰아붙이고, 심지어는 납치까지 저지르는 만행을 저지른다. 지역주의에 대한 가능성을 은밀히 제시한 것은 이때부터다. 박정희 정권은 “김대중=용공=호남”등식의 뼈대를 제시했다. 중요한 건, 이 당시 투표 결과는 지역주의와는 무관했다는 점이다. 부산·대구 지역에서도 김대중은 많은 표를 얻는다.

“김대중=용공=호남”도식은 1980년 신군부의 등장과 함께 확대 생산된다. 5·18 이후 근거 없는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언론을 장악했다. KBS, MBC,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을 그의 손아귀에 집어넣은 후 ‘3김정치타파’담론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갖은 탄압에도 불구하고 민주세력은 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민주화 운동의 동력을 재가동한다. 결국 87년 6월 항쟁으로 전두환 정권은 막을 내리게 된다.

87년 말에 있은 제13대 대통령선거는 지역주의의 정착의 토대를 마련했다. 담론 상으로 형성되던 ‘3김정치타파’등의 구호가 현실이 됐기 때문이다. 강한 민주화 열망을 갖던 시민 세력은 노태우 당선으로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국민들은 민주화 세력의 패배 원인을 양김의 분열에서 찾았다.

민주화 이후 ‘정책’ 없는 이념적 담론 싸움이 계속 되고 국민들은 정치에 싫증을 느끼게 된다. 정치인들 간에 국민을 위한 건강한 정책 대결은 찾아볼 수 없고 좌·우 논쟁만 심화되었다. 선거철만 되면 국민들은 정치인들의 엇비슷한 정책을 잣대로 대표를 선출하지 않게 됐다. 지역·학력·성별·인종 따위의 단순한 차이를 고려할 뿐이다.

저자는 지역주의를 이용하고 악용하여 정권의 정당성 내지 지속성을 추구하려는 세력이 문제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안토니오 그람시의 “인간은 이데올로기 안에서 사실을 인식한다”라며, “사실 이전에 사실을 이해하는 방법을 둘러싼 투쟁이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이데올로기를 선점하려는 기존 권력의 각성을 촉구하는 것이다.

 

지역주의 담론이 가진 문제가 쉽게 사라지리라 생각지는 않는다. 지역주의는 권력 지속과 유지를 위해 조장되고 선동된 것이다. 현존하는 정치적 무관심은 정치가들이 정책 대결 아닌 이념 대결로의 건전하지 못한 싸움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지역주의가 해소된다고 해서 꿈같이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정치 발전이 한 번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환상은 버려야 한다.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건 광주를 비롯한 호남의 정서다. 개인적으로 인간은 합리적 동물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철학적 담론을 들이대면 이성과 감성이 골고루 섞여있는 개체다. 따라서 정치적인 선택에 직면할 때, 합리성만을 잣대로 대표를 선출할 순 없다. 예컨대 호남 사람이 김대중과 민주당을 선택하는 이유는 이성과 감성 어느 잣대일까? 두 가지 모두 섞여있겠지만, 5·18 당시 아무런 이유 없이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분노를 이성의 영역에서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불가능 하리라 본다. 그들이 갖는 군사정권와 국가에 대한 분노는 그것이 비이성적이라 일컬어질지라도 정당하다. 이런 방식의 지역주의를 타도해야할 대상이라고 공세를 펴는 건 역사에 대한 몰이해 때문이라 생각된다. 다만,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담론들(노동자 처우 개선, 다문화 가정의 제도권 이식 등)을 구체 정치에 실현시킨다고 생각해보자. 미시적 담론이 지역주의와 같은 추상적 거시 담론을 밀어낼 수 있지 않을까.

 


피아노 좋아함에 대한 관찰기

호주에 갔었을 때, 한국에 돌아오면, 정말 이것만큼은 배워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수영이고, 다른 하나는 피아노이다. 수영은 여러모로 배워야 하겠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것은 내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보편적인 이유, 수영을 할 줄 알면 물 속에서 더 신나게 놀 수 있다는 것,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핑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반드시 배워서 나중에는 서핑 보드를 타고 파도를 질주하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었다. 그래서 호주에 다녀오자마자 수영을 다니기 시작했다. 잠시 쉬었었지만, 겨울이 되서 다시 시작했는데 그 재미가 쏠쏠하다.

다른 하나는 바로 피아노인데, 이것 역시 호주에서 자극을 준 친구가 있었다. 벨기에에서 온 친구였는데, 그 녀석은 나와 동갑임에도 불구하고 불어와 영어를 잘 구사할 줄 알며, 학교도 졸업할 때가 다되었던데다가, 피아노만 있다하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쳐대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잘 말이다. 나도 어렷을 적에 3년 정도 피아노를 배웠던 터라, 콩나물을 그릴 줄 알고, 건반을 누를 줄은 아는데, 그 친구가 내가 원하는 곡을 말하자마자 쳐대는 모습을 보니 정말 부럽더라. 멋져 보이고. 악기를 하나 다룰 줄 안다는 사실, 그것 자체만으로도 한 사람의 삶이 매우 풍요로워 보였다. 그러니 내 눈에는 그 친구의 피아노 치는 모습이 배불러 보였다는 것인데, 그도 그럴것이, 치는 그 순간 정말이지 나도 즐겁고, 그 친구도 즐거워 보였으니까.

그래서 이번 겨울에, 할 일이 많다 많다 변명만 늘어놓지 말고, 술도 좀 적당히 먹으면서, 내 삶 자체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피아노를 다시금 배워야 겠다는 생각에, 내 주제보다 조금 어려운 곡, 그렇지만 예전에 좋아하는 친구에게 쳐주려고 연습을 조금이나마 했었던, 캐논변주곡 연습을 다시금 시작했다. 지금은, 더듬거리기는 하지만 5분정도의 연주를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더 좋은 곡을 듣고 있고, 더 어려운 곡을 치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배움의 즐거움, 미학이라는게 바로 이런거 같다. 최근에는 이렇게 소소한 즐거움이 날 웃음짓게 만드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혼전 순결 감각 경험에 있어 부족한 1%

내가 재학하고 있는 재학생 커뮤니티에 가면, 끊임없이 제기되어 오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혼전 순결에 관한 태도이다. 누군가는 소위 말하는 떡밥을 던져서 사람들로 하여금 혼전 순결에 대한 어떠한 태도를 보이는지 보여주는데, 내 또래, 재학생이니 그러하겠지, 학생들 대부분이 간단하게, '개인차', '사랑' 정도로 이 문제를 환원시켜 해석하는 것 같다. 누가 옳고 그른지에 대한 태도가 있겠냐만, 개인적으로 혼전 순결이라는 문제는 단순히 '순결'의 문제를 떠나서, 나를 비롯하여, 고등학교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어떠한 주입적인 가치관에 대한 균열이 바로 대학이라는 소사회에서 벌어지고 있음에 나타나는 그야말로 고민인 것 같다.

중학교 시절, 하루키 소설, 상실의 시대를 읽은 적이 있다. 물론, 완독은 커녕 반절도 읽지 못하고 내려놓았는데, 그것은 그야말로 중학교 학생의 눈에는 야설로 느껴질법한 사랑, 혹은 성적 묘사가 표현되어 있었다. 하루키 덕분에 그 시절에 페니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중학교 시절 나는 지금은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인 하루키의 소설을 읽기를 포기하게끔 만든 것은 바로 그러한 묘사도 일부분 자리매김하고 있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개념 안에 들어 있는 사랑하는 이성과의 혼침이었다. 중학교 학생에게 추상적인 사랑 개념과, 어떻게 보면 실천적인(?) 사랑이라는 개념이 공존하고 필수적인 것이다라는 뉘앙스를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내 또래의 많은 친구들이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이성과의 잠자리를 묵인하고 용인하는데, 과연 그렇게 사랑을 남발하고 다니는 친구들 중에, 정말 상대방을 사랑하고,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는 점이다. 각자의 사랑이라는 개념이 다르겠지만, 너무 쉽게 우리는 사랑하고 좋아한다면 같이 잠자리를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매체라는 것이 정말 무섭고, 교육이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선정적인 광고물과 방송이 분수처럼 흘러내리는 이 시대에서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이란, 지금 우리가 공론은 아니더라도, 친구들 사이에 은연중에 흘리고 다니는 농담이, 이제는 현실화가 되어가고 있으니까. 더불어, 우리가 학교에서, 교회에서, 성당에서, 절에서, 집에서, 어디서든, 성과 관련된 행위를 금기시하는 교육적인 것 역시 우리를 아직까지 순결이라는 명목으로 붙잡아 놓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고.

논점이 많이 흐려졌지만, 적어도, 혼전 순결을 보수적인 관점이니, 혹은 시대에 뒤떠러진 사람이니, 기독교니, 하는 말따위로 호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지탱하고 뼈대를 이루는 하나의 가치관을 그렇게 등떠밀듯이 밀어붙이는 사람들에게, 적어도 니가 가지고 있는 '사랑'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일 분이라도 생각해보라 말하고 싶다. 내 생각에, 과연 사랑이, 니들이 가지고 있는 그런 사랑이, 젊음이 가지고 있는 열정과 성적으로 활발한 열망을 제외하고서 뭐가 남는지, 의문이 든다.


Myron's Australia - 2010. 12. 11 Myron's Australia

2009. 12. 11. 금요일. WWOOF의 시작 

Backpackers를 나와서 Silvia의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어. Silvia가 누군고 하니, 어제 연락이 된 WWOOF의 주인장이지, 그 아줌마 집은 Cleveland라는 곳에 위치해 있었어. Brisbane CBD에서 기차를 타고서 2시간 남짓 가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라더군. 기차역 종점에 해당하는 곳이었어. 일부러, 도심에서는 조금 떨어진 곳에 가면 한국 사람을 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물론 가장 고려했었던 점은, 오늘 당장 날 받아줄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였어. 사실 이메일로 내 사정을 전달해서 이렇게 접촉이 간단했다면, 지난날 이 도시로 넘어오는 기차안에서 열나게 전화하고, 말이 안통해서 답답했던 기억들을 가지고서 걱정했을 필요는 없을텐데 말야. 난 쓸데없이 걱정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거든. 음, 일어나지도 않을 상상따위를 막 가정해서 혼자 신경질을 내고, 혼잣말을 할 때가 있어. 자주 그러는 건 아닌데, 가끔씩 그러는 내 모습은 글쎄... 당최 고쳐지질 않아.

날씨는 화창했어. 아침 일찍 나서서 그런지 밖에서 놀기 딱 좋은 온도였었는데, 물론 이내 더워졌어. 한국의 햇살보다 조금 더 뜨겁게 느껴지는건 남반구의 하늘을 처음 접해본 새내기의 순결이랄까.

Cleveland역에 도착하자마자 바다를 볼 수 있었는데, 아, 내가 진짜 호주에 와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건, 집앞에 늘어서 정박해 있는 요트들을 봤을 때야. 정말 멋지더라구. 그런데 약속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다음을 기약하고서는 그냥 Silvia의 집으로 출발했어. 걸어서 시간이 좀 걸린다고 했었는데, 생각해보면 이 사람들 날 데리러 오기는커녕, 알아서 찾아오라는 거야. 30분 거리에 초행길에, 짐도 딸리고, 여기는 길 물어보는 것도 나한테는 생소하잖아! 사하라 사막에 떨어진 기분이랄까. 덥기도 했고, 막막하기도 했고. 어제 찾아본 구글 지도가 유용하기는 했지만 사실 딱 맞아 떨어지지 않아서 지나가는 사람한테 어디로 가는지 물어봤어. 길거리 이름을 메모장에 적어갔으니 발음을 나름 유창하게 했다고 생각은 했지만 내 말을 가끔씩 못알아 먹을때는 기가죽는 느낌이었어. ‘이게 내 잘못이니?’

3번 정도의 물음 끝에 내가 원하는 Street의 표지판을 찾을 수 있었고, 그 다음에 그 아줌마 댁의 집을 찾기는 상당히 편했어. 그 아줌마 집 앞에서 Michael에게 전화를 했어. 이 사람은 아줌마 남편되는 사람인가봐. 지금 생각해보면 발음이 절대 호주 사람이 아니고, 결론부터 말하면 독일 사람인데, 독일 사람의 특유 발음이라기 보다는, 약간 남미 사람처럼 엄청난 속도로 자기 할 말만 뱉어 냈었는데, 아무튼 내가 문 앞에 도착했다는 사실은 알리긴 했어.

우습지만, 그 아줌마가 날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전화를 끊자마자 스쳐지나갔어. 사실 그게 중요한게 아닌데, 왜 이런 생각을 했지? 지금 돌이켜보면 내 자신에 대해서 화가 나는데? 아무튼, 그런건 기우에 불과했고, 그 아주머니를 향해서 면접 보듯이 썩은 스마일을 날렸어. 그 아주머니는 환영해주는 분위기로 날 반겼고, 뱀이나 앵무새, 물고기 따위의 친구들을 소개시켜줬어. 그래, 보기에 작은 동물원 같다는 인상을 받았어. 게다가 아주머니에게는 두 자식이 있었는데, 여자아이, 남자아이. 걔네들은 날 보길, 매우 낯설어 했어. 아무튼, 그 친구들이 날 쳐다보는 것처럼, 나도 이 상황이 매우 낯설었던건, 그 전에 노란 머리 한 애들하고 같이 살아보지 않았었음에 기인했지.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난 이런 환경이 좋았어. 아저씨 댁에 있을 때와는 달리 마음이 너무 편해졌거든. 동물들에 둘러쌓인 환경은 나로 하여금 마음을 온화하게 만들었지. 참, 아주머니가 내 짐을 보더니 의외다 싶어했어. 여행을 다니는 녀석이 짐이 왜 그거밖에 없냐는거지. 그래서 친구집에 다 놔두고 왔다고 했지.

아무튼, 어색한 만남이 끝나고서 난 바로 일을 시작했어. 의욕 충만이었거든. 아줌마는 청소일을 시키셨어. 앵무새 새장을 새로 만든 듯 보였는데, 거기에 애들이 살아야 한다면서, 자기는 비싼 돈 주고 산 앵무새를 죽이고 싶지 않아서, 그 철장에 있는 독기를 다 제거하고 싶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어. 그 와중에 Michael처럼 보이는 녀석을 만났는데 알고보니 같이 WWOOF를 하고 있는 Tim이라는 친구였어. 뉴질랜드에서 왔다는군, 가까운 나라에서 와서 왜 이걸 하고있는거지? 의문이 들었지만 그 의문은 나중에 그 친구가 다시 풀어주겠거니 했지. 아무튼 만나서 엄청 반가웠어. 심심하지는 않겠구나 싶었거든. 아무튼, 그 친구가 말하기를 내가 오기 전날까지 다른 친구가 있었다고 하는군.

Lia는 그 아주머니의 딸 이름이었어. 10살짜리 꼬마녀석이고 내가 청소할 때 날 감독하는 보스의 역할을 맡았지. 그 친구는 소심하게 나한테 이것저것 하라고 주문했어. 내가 말도 장난스럽게 붙이다보니, 꼬마 친구들의 수줍음은 역시 순식간이야.

일을 하다보니 목이 말랐고, 물을 좀 가져다 달라고 했더니, 니가 갖다먹으라는 당돌한 말에 당혹스러워했지만,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라는 말이 맞기에 내가 찾아갔지.

일이 끝나고 Tim이 나를위해 요리를 해줬어. 그건 옥수수 콘모양으로 생긴, 알고보니 그건 파스타였지만, 확실한건 스파게티는 아니었어. 맛은 당연히 일품이었고. 그리고 나서는 쉴 수 있었고, 남은 시간이 상당히 많았어. 그 시간동안 여기에 머무르게 될 일수, 대략 2주간 있어야겠다 싶었어. 하루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인상을 받았고, 특히나 영어와 관련하여,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어휘의 한계 등에 부딪히는 순간이었어.

아무튼, 잠은 자야지.


Myron's Australia - 2010. 12. 10 - 브리즈번 Myron's Australia

2009. 12. 10. 목요일. 모험의 시작

정확하게는 아침 8시에 Brisbane에 도착했어. 이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사실,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 같아. 마치, 시드니 공항에 막 떨어진 사람처럼 말이야. 역시나, 난 아무생각이 없었어. 오랜 시간, 거의 10시간 정도의 기차 여행이었을까? 아마 900km 가까이 되는 여행, 부산에서 신의주를 오가는 그런 여행이었을꺼야. 그간 보았던 풍경들, 사실 어두운 배경에 그렇게 많은 풍경들을 접하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경험들은 정말 전혀 특정한 감정, 특히나 슬픔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었어.
Brisbane에 도착하고, 그 출구로 나와서는 나는 사실 막상 할 일이 없음에, 앞에서 담배를 지긋히 피고있는 내 또래의 친구에게 Brisbane에 명소 같은 것들을 물어보기 시작했어. 사랑스럽게 생긴 그녀, 혼자 앉아 있는데다가 담배까지 말고 있으니 말 붙이기는 편했어. 그래서 구경할 만한 좋은 곳을 지도에다 찍어달라고 부탁했지. 그녀는 흔쾌히 이야기를 시작했어. 물론, 대부분 못알아 들었지만. 아무튼, 그 아가씨의 조언에 따라서 난 Brisbane에 있는 한 공원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어. 그 공원 안에는 대학교가 있었고, 대학 안에 공원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거기엔 도심을 가르는 강이 흐르기 까지 했어. 우선, 좀 씻고 싶다는 생각이 팽배해서, 화장실에 들러서 사람다운 모습으로 정비를 했어. 주제에 썬크림까지 바르고서 말이야. 완전 거지가 따로 없었지 뭐야. 그리고서는 근처에 있는 강변으로 향했어. 물을 보면 사람이, 마음이 여유로워 진다고할까? 도시 사람이라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물로 향하는 내 모습은 극히 자연스러웠다고 할 수 있었어. 운이 좋았는지 어쨌는지, 마침 벤치에 홀로 앉아있는 영감님을 만날 수 있었고, 난 자연스레 그에게 내가 묻고자하는 본질? 적인 질문, 어디에 가면 농사를 지을 수 있는지, 돈을 벌 수 있는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물어봤어. 사실, 호주에 온지 몇 일 안됐지만 이렇게 말을 알아들을 수 없게 말하시는 호주 사람은 처음 봤을 정도로 열악한 리스닝 실력에 덧붙여 쩔어있는 연음으로 조언을 해주셨기에 무슨 말인지 당최 알아들을 수 없었어. ‘아, 이런 특성을 가진게 호주 사람이구나.’
그 영감님의 도움 덕택에 난, 잠시나마 내가 갈 목적지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을 가지게 되었고, 그리고서는 CBD로 향했어. 가면서 만난 사람 중 하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던 것 같아. ‘어디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나요?’ 한국에서 이런 질문을 대뜸 누군가에게 받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아마, ‘글쎄요...’ 정도 아닐까? 아무튼 다시금 내가 도착했던 기차역으로 향했고, 주워들은 정보로는 Gold Coast에 가보는게 어떨까 하는 정도였어. 그리고 일자리를 소개받고 싶으면 돈을 좀 내야 된다는게 상삭이라면서 말이야. Gold Coast에 가기 위해서는 내가 Sydney로부터 건너온 비용만큼, 대략 70$을 지불해야 했기 때문에, 그쪽으로 향하고 싶지는 않았어. 그래서 포기를 하고, Backpakers에서 정보를 얻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역에서 주워들은 지도를 펼치고 숙박시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지.

3군데 정도 돌아다녔을까? 그리고 나서는 피곤해서인지, 등록을 쉽사리 해버리고, 물론 그곳은 인터넷이 무료였어. 방에 들어간 후에, 방에 있던 독일인 친구에게 어떻게하면 농장에서 일을 구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물어봤었어. 그 친구는 어느 장소와 Backpackers를 소개시켜 줬던 것 같아.

 그리고 나서는 WWOOF책을 펴들고는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어. 하루라도 이곳에서 머물고 싶지 않았기에, 호주인의 품에 안기고 싶다는 한가지의 마음으로 20여명 가까이 되는 Host들에게 연락을 돌렸던 것 같아. 장문의 글을 가지고서 말이야. 내일 당장에 자리가 비어있는 집이 있는지 없는지 말이야. 그리고는 몇 시간 지나지 않아서 수 십통의 답장을 받았고, 그 중에 한 집만이 유일하게 날 받아준다는 메시지를 남겼어. 정말 뿌듯하다고 할까? 말은 통하지 않지만, 글로써는 의사소통이 가능한 그런 느낌이었어. 여기서 좀 눌러 지내고 있으면 영어가 금방 늘겠다는 그런 말도 안되는 공상을 가지고서 말이야. 아무튼 그 주인과 약속을 잡은 후, 답장이 오기전, 해가 지기전에 아까 보지 못했던 나머지의 도시가 궁금해서 방을 나섰어. 숙소 근처의 다리를 건너고, 도시 관광을 했어. 약속이 잡혀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마음이 편한건 사실이었어.  


Myron's Australia - 2010. 12. 09 Myron's Australia

2009. 12. 09. 수요일. 여행을 떠나요.

일어나자마자 CBD로 나갈 준비를 했어. 아직 생각이 정리도 잘 안되고, 뭘 해야할지 막막하기는 했지만, 어제 곰곰이 생각한 바로는, 역시, 여행, 돈 이런것도 내 목적 중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내가 진짜 원하는건 영어 실력 아닐까? 그리고 여유가 생기면 돈도 좀 벌고말이야. 사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호주에 왜 가는가? 라는 간단하면서 승패를 좌우하는 그런 극단적인 물음앞에, 대부분은 그래, 영어, 돈, 여행이라고 말하지만, 우선 순위는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지.

어제 저녁에 사실 아저씨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 뭘 해야될지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아저씨께 물음을 던져드렸고, 많은 이야를 해주셨지만 결론적으로, 여행을 떠나보라는 이야기를 하셨어. 여행. 사실 눌러 앉고싶다는 생각이 마구 들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아저씨의 조언이 나한테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 지체할 필요도 없이 빨리 떠나야겠다는 생각에 짐을 부랴부랴 아침에 싸들고는 편지 한 장 남겨놓고 집을 나섰어. 물론 라면을 하나 빌려먹고서는 말이야. 짐의 절반은 좀 맡겨주십사하고 말이야. 컴퓨터고, 캐리어고, 옷이고 많은 것들을 남기고, 진짜 필요하다 싶은 것들만 챙겨서 가방하나로, 어깨는 가볍게 마음은 무겁게 출발했어.

CBD에서 어제 헤메고 다녔을 때 주웠던 지도를 펼쳐들고는, 나는 거기서 광고 비슷한걸 봤는데 그게, WWOOF였어. 내 호주 삶의 90%를 차지하는 대장정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지. 한편으로는 이것 때문에 다른 많은 것을 못봤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것 때문에 호주를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고 할까? 이미 다녀왔던 형님 중 한 분도, 한 번쯤 해보면 좋겠다는 식으로 말씀을 하셨으니, 당장에 이것부터 시작해 보는게 어떨까 싶어서 이거다! 결정해버렸어. 광고지에 나온 대로 WWOOF책을 살 수 있는 곳에 찾아가서는 책을 사고, 등록을 했어. 60$을 주는데 크게 아깝지 않다는 생각으로. 물가 개념이 안잡혀 있기도 했지만, 하려고 하니까, 이게 내가 할 일이라고 마음을 먹으니 다른 부수적인 요소들은 안보이는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어. 이 책은, 그저 사면 날 연결시켜주는, 그런 한국의 유학원 시스템이 아니라, 내가 직접 연락을 주고받아서 가든 안가든 결정을 하는거야. 주로 농장과 컨텍이 되어있는데, 땅은 넓고 사람은 부족한지라 이런 시스템을 이용해서 부족한 인력을 보충하고, 여행자들은 호주인과 같이 어울리면서 그들의 문화를 체험하는 일석 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는 셈이라지. 그게 일석 이조가 될지, 농장 주인에게만 일석 삼조가 될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긴해.

사실 책을 받아들고는 고민이 많았어. 적극적으로 행동해야된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그 적극성은 영어를 뒷받침하지 않고서는 나오기 힘든 부분중에 하나였으니까. 특히나 내 성격상 조금 꿇린다 싶으면 답답해하고 꽁해있으니... 받아들고는 이걸, 전화를 해서 물어봐야하는데 어떻게 하지? 각본을 써서 읽어내려가야하나? 그러면서 도시를 배회하기 시작했어. WWOOF도 농장이 많은 곳에 사람이 많을 테니, 농장으로 유명한 곳을 찾으면 일도 구하기 쉬울테니 사람들에게 어느 지역이 괜찮은지 물어보고 싶어졌어. 배가 고파서 우선 맥도날드에 찾았어. 거기서 내 나이또래로 보이는 녀석한테 어느 농장이 괜찮은지 헌팅아닌 헌팅을 했고, 그 친구 녀석은 Queensland를 추천해줬어. 그저 나는 일단 시드니는 떠나보자하는 마음이었고, Queensland는 당장에 기차를 타고가기도 편해서, 여기구나 싶어서 출발해보자 생각했어.
Centre로 돌아가서 Brisbane행 기차 표를 샀어. 표를 사는 중간에도 그 점원에게 어느 지역이 농장이 유명한지 물어봤고, 비스무리한 대답을 해줘서 여기구나 확신하게 되었지. 물론 잘 못알아 들었던게 사실이야. 영어를 하는건지 감으로 때려맞추는건지 모르는 상황에서 티켓을 구입하고는, 마침 운 좋게도 저녁에 티켓이 있었고 남는 시간동안 도시나 좀 더 구경해보자는 마음으로 돌아다녔어. 그리고 거기서, 내가 좋아했던 친구에 대해서 생각을 했던 것 같아. 공원 벤치에 앉아서, 갑자기 왠 향수를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련한 마음, 뭔가 두고온 듯한 느낌있잖어. 그런 기분이 들었어. 내 마음을 이야기하고 왔으면 어땠을까 이런감정이랄까.

정시가 되었고, 난 그렇게 Brisbane행 기차를 탔어.

  


Myron's Australia - 2010. 12. 08 Myron's Australia

2009. 12. 08. 화요일. 변화가 필요해.

 

내가 느낀바로는 아저씨 댁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그렇게 멀지 않다고 느꼈었는데, 사실 가까운 거리에 있음에도 나는 큰 정류장으로 향했어. 걸어서 20분정도의 거리에 있는 Castle Hill Centre로 말이야. 어제 돌아오는 길에 맥도날드 햄버거도 하나 사먹고. 형 말로는 이게 제일 싸다고 했었는데, 그렇게 싸지도 않은 것 같아. 크기도 생각만큼 크지 않았고. 아무튼, 버스를 타는 과정에 있어서, 영어를 좀 많이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버스에 타고 기사 아저씨한테 QVB로 가고싶다고 말했어. 당최 V발음음과 B발음은 어떤 차이가 있는거지? 의문을 품은채로 말야. 아무튼, 버스와 지하철 요금 체계에 대해서 궁금했던 나는 같이 타고 있던 어느 아줌마한테 겁 없이 그 차이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이야기 했는데 뭐라고 이야기는 잘 해줬는데 당최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버스에서 내릴 쯤 해서 Harbor Bridge처럼 보이는 다리를 지나는데, 이게 그게 맞는건지 그렇지 않은건지 의문이 드는거야. 그래서 옆에 있는 훈남 친구에게 물어봤어. ‘이게 그 유명한 Harbor Bridge가 맞는겨?’ 그 친구는 매우 친절히도 답해줬어. 그리고는 이 다리는 정말 멋진 것 같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지. 내가 봐도 그래.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니까. 그래서 알고 보면, 나 그녀에게 고백도 많이 했어. 아무튼 이 형님 덕분에 호주 사람들은 다 친절하구나 하는 근거 천박한 일반화에 빠지기 시작했어.

버스에 내려서는 누님이 소개시켜준 유학원을 찾기 시작했어. 그곳은 한국에서도, 호주 내에서도 한국 사람들에게는 매우 유명한 곳이라더군. 그런 것 같아. 지사가 큰 도시마다 있으니까. 그 당시에는 뭐 그런가보다 했지만. 장소가 이상한 곳에 박혀있어서 초행길에 찾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호주 길찾기는 지도 하나만 있으면 그렇게 어렵지 않아서 싱글벙글하면서 여유롭게 유학원에 들려서 상담도 받고, 학원을 등록하기로 사인까지 하고 나왔어. 물론 돈은 아직 안가져다 줬지만. 그 상담사는 날 직접 학원까지 데려다 줬어. 지하철 통로를 통과하고, 그 동안 이것저것 사람들 행동따위, 그런걸 구경했어. 그 아주머니랑 같이 다니면서, 사실 걱정했던건 가격이었어. 다른 곳도 마찬가지지만, 시드니의 물가는 장난이 아니었거든. 그러면서 학원을 다니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지, 고민도 되고. 이런 고민이 드는 순간 제쳐버리고 다른 일을 시작하는 편이 나았을 텐데. 후회없는 선택이 가장 현명한 선택인 것 같아. 그 순간 망설여진다면, 그건 내가 진실되게 원하지 않는 것일테니. 나중에서야 내 마음이 가는데로 선택하는데 익숙해졌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어.

학원 등록 후, 아주머니가 가르쳐준 것처럼 시드니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마음먹었어. 그리고는 거만하게 생각했지. 시드니는 서울보다 작은 것 같은데? 이러면서. 사실 CBD는 그렇게 크지 않아. 우리나라 명동이나, 종로처럼 말이야. 그런데 시드니라고 부르는 전체 도시를 봐서는, 서울보다 훨씬 클꺼야. 아무튼 그런 거만함으로 이곳저곳 돌아다녔지만, 내 안의 그 걱정들은 날 끊임없이 붙잡아서는 웃음기 없는 그런 모습으로, 그 아름다운 광경들을 쳐다보게 만들었어. ‘아, 호주의 삶은 현실이구나.’ 나에게 있어 호주는, 놀러온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목적, 영어의 사용과 활용, 그리고 전반적인 영어 회화 능력의 상승이었으니까. 아름다운 Darling Harbour, Opera House 따위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어.

2-3시간 정도 걸었을까? CBD 최중심으로 되돌아왔어. 그 때, 잠깐 쉬면서 우연찮게 한 커플을 보게되었어. 재밌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그들의 모습이 부러웠던지, 나는 그들과 말을 붙여보고 싶었지만, 그건 그저 생각에 그치고 말았어.

잠시 Backpackers에 들렸어. 이것저것 정보가 있을까 하고 말이야. 게시판 같은 것들도 구경하고, 어떤 애들이 여기서 묵고 있나 궁금하기도 했고. 4군데 정도 돌아다니면서, 방값이 얼마인지, 게시판에는 어떤 글들이 올라와있는지 살펴보았어. 한국 사람이 얼마나 많이 오갔는지, 프론트에는 한국사람이 카운터를 보고있는 경우도 있었어. 특히나 YHA는 시설이 매우 좋아보였어. 이때부터 이녀석하고 인연이 있었는지 계속 YHA에서만 묵었는데, 사실 다른 곳에 비해 조금 비싼 편이더라. 아무튼,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고갈된 체력에 채찍질을 가해서 다시 돌아오게 되었어. 무거운건 몸뿐만이 아니라면서. 


Myron's Australia - 2010. 12. 07 Myron's Australia

2009. 12. 07. 월요일. 매우 더운날, 매운날의 월요일.

어제 기존에 연락을 해두었던, 김사장님께 전화를 드렸었어. 전화 받는 모양새가 시큰둥 하시더군. 뭐, 나도 경상도 피를 이어받은지라 그만큼 무뚝둑할 수 있으니 그러려니 했어. 일단 월요일이니 만큼, 은행 계좌도 열고, 핸드폰도 만들구, 이것저것 해보려구 했어. 하루 하루가 돈이고, 아깝다는 생각부터 막 드는거야. 사실 그래도 아저씨 댁에 있었으니 조금은 덜했지만 서도. 그래서 약속했던 Strathfield로 향했어. 아저씨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갈아탔어. 다행스럽게도 인터넷이 되는 바람에 길을 기존에 찾아서 간 것도 있지만, 헤메지는 않았어. 궁금할 때 기사아저씨한테 물어보기도 했고.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사장님께 연락을 드렸어. 약속 장소를 잡은 뒤에 은행 계좌를 만들고, 생각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영어로 어떻게 이야기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strathfield는 한국 사람이 워낙 많은지라, 한국인 ANZ점원이 있었어. 일을 다 보고는 그 사장님이 운영하는 PC방으로 향했어. 거기서 그 PC방 관리자인 듯이 보이는 분과 이야기를 나눴고, 그 분은 좋아보여서, 난 여기서 일하는 줄 알았어. 그런데 다른 곳으로 나를 데려가시더군. 면접을 봐야된다면서. 10분 정도 자동차를 타고 대형 마트로 향했어. 아마 그곳에서 일하는가보다 싶었어. 더운 날씨에 땡볕아래에서 아무 생각 없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제의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나한테 오더니 말을 걸기 시작했어. 너같은 녀석은 워낙 많이 보니 이런식으로 대해도 된다는 듯이. 몇 마디 건네시더니, 나랑 같이 일하고 싶지 않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을 하시더군. 난 실속은 없는데 면접에는 강한스타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것 같지는 않더라구. 내 태도에 뭔가 아니꼬운게 있었던 모양이야. 그럼에도 날 뽑아주는 이유는, 내가 사전에 부탁드렸던 분의 체면을 생각해서 뽑아준다고 하시니 이걸 황송하다고 말씀드려야 하나? 일할 자세가 안되어있다는 식의 말을 했었던 것 같은데, 사실 그건 맞는 말이었어. 한인 사장 밑에서 일하는 것, 그건 한국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잖아? 그저 환경만 조금 달라져 있을 뿐. 한국 사람들과 같이 살면서, 한국말 쓰고, 그저 외국인이 손님일 뿐인 그런 상황. 그래서 일을 할 수도 있었지만, 해보고 아니면 마는식의 사고방식이었으니, 그 사장님이 화를 낼 법도 했지만. 군대도 제대했고 말도 잘 듣는 스타일이라 그런식으로 이야기하니 기분도 나쁘고 자존심도 좀 상하고 말야. ‘애초부터 아닌 인연은 만나지 않는 편이 오히려 좋다.’ 그 사장님이 나한테 했던 말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장님한테 배울 점은 그거 아니었을까. 아저씨를 더 깊이 알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하고 말이야. 난 다시 역으로 돌아왔어, 날 태워주신 그 분은 연세대를 나와서 이쪽으로 이민을 온지 10년이 되었다며, 나에게 이것저것 잡담을 걸어주셨는데 귀에 잘 안들어왔어. 내 태도에 문제가 있는지 성격에 문제가 있는지, 일을 할지 안할지, 그럼 뭘 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었거든. 그리고는 난 앞으로 내가 보낼 호주의 삶에 대해서 다시금 고민하기 시작했어. 그 사장님이 말한 것처럼, 난 진짜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아무 생각이 없었던거야.

무엇을 할지, 어떻게 즐겁게, 그리고 보람차고 알이 단단히 차게 호주생활을 해 나갈지에 대해서 깊게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하다는 느낌을 받았어. 잠시 역 앞 벤치에 앉아서 곰곰이 생각을 했어. 이제 뭘하지? 그냥 집에 가기에는 뭔가 허전한 느낌인데? 욕을 얻어먹어서 배는 부르지만... 일단 도심에 한 번 가보자. 어제 구경도 못했고 겸사겸사 해서 말이야. 카메라도 들고 왔겠다 사진도 좀 찍어보구 말이야. 아저씨는 내 카메라를 보시더니 그렇게 시큰둥하게 반응하셨었나? 태도가 글러먹었다는 말은 이런데서 보여지는구나. 그래, 기분 나쁜거, 안좋은 일이 기억에 많이 남듯이, 이런건 내 삶에 있어서 교훈이 될만한 일이야.

시드니 시내에 들어가서 정보를 얻어 보자 하고서는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어. 기존에 호주에 다녀오셨던 형님의 말씀처럼. 그럼에도 특별한 해답을 얻지는 못한 것 같아. 도심으로 이동했다고 해서 답이 쉽사리 나올꺼라는 내 생각은 좀, 뜬구름 식의 행동이었던 것 같기도해.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고, 이제는 햇살이 조금은 누그러졌을 때 아저씨 댁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탔어. 아저씨 댁에서 씻고 쉬면서, 영어 학원을 한 번 다녀 보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어. 정보는 여기서도 많이 얻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거든. 그래서 누님께 전화를 드려 어느 유학원이 괜찮은지 여쭤봤어. 내일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고서는 말이야.


Myron's Australia - 2010. 12. 06 - 시드니 Myron's Australia

2009. 12. 06. 일요일. 시드니 도착.

9시쯤이나 되어서 시드니에 도착했어. 6-7시간의 비행, 그 중간에 먹은 기내식은 맛있었고, 일본 사람의 특유의 친절은 기분을 내내 훈훈하게 만들었어. 중간중간에 스튜어디스에게 영어를 쓰면서 들었던 생각은, 이정도면 먹히겠지? 하는 거만함이랄까. 그나저나 재밌는건, 내리자마자 드는 막연함이었어. 난 이제 뭘하고 먹고 살아야하지? 어디로 가야할까? 이런 걱정이 갑작스럽게 쏟아져내려오는거야. 왜냐구? 다른사람들은 공항 밖에서 손흔들고 피켓흔들면서 한국에서, 혹은 타지에서 온 사람들을 반기고 있는데 난 나 혼자서 허공에 손짓을 하고 있으니 이건 뭐 갑자기 걱정이 밀려올 만도 한거야. 그런데 사실 난 믿는 구석이 없지 않았어. 호주에 시민권자로 있는 케빈 형의 가족들을 사실 믿고 있었거든. 출국 전날까지 형한테 연락이 없다가, 출국하는 날 메일로 연락이 와서, 사실 어제 나리타 공항에서 이메일 체크를 할 때, 연락할 수 있는 번호를 받아놨거든. 일자리도 어찌어찌 마련되어 있었어. 아무튼 그 이야기는 뒤로하고. 날짜도 사실, 케빈 형이 날 태워다 주러 오는 그런 편한 날짜로 잡은거였는데 그 형이 갑자기 한국으로 입국하는 바람에. 조금 계획이 얽히기는 했어. 아무튼 난 케빈 형의 누님에게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 입국 심사를 마치고서, 케빈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어. 그런데 이게 뭐야? 전화번호가 잘못됐다고! 50센트, 500원이나 하는 전화비를 그냥 날리게 생겼잖아. 다행스럽게도 나영 누님의 전화번호는 알고 있어서 그쪽으로 전화했는데, 왠 외국 사람이 전화를 받아서 조금 난감하긴 했어. 난 남편인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고 하는군. 아무튼 그래도 의사 전달은 했지. 그 친구가 말하길, 10분 뒤에 다시 전화를 하라는거야. 십 분동안 멍하니 기다리면서, 나같은 한국 사람이 많구나 하는걸 느꼈어. 내가 통화하는데 애를 먹고 있으니까 누군가 다가와서 전화카드를 쓰라면서 내밀었었거든. 갑자기 통화가 되는 바람에 그 사람하고 이야기는 못했지만. 만약 그 사람과 이야기를 붙였다면 내 호주의 시작은 또 달라지지 않았을까? 여행, 워킹홀리데이, 이건 사람이 변수인거 같아.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내 호주의 일기가 달라지는 것 같아.

다시 건 전화에 누님은 반갑게 맞이해 주셨고, 어떻게 아저씨 댁에 갈 수 있는지 가르쳐 주셨어. 마치 어린 아이의 담임 선생님처럼. 난 마치 그런 존재구나 하는 느낌을 현지인한테서도 각인받은 거 같아. 그래서 누님이 하시는 말씀을 놓칠새라 다 받아적고나서는 Castle Hill로 나도, 내 짐도 모두 옮겨갔어. 버스를 타는 곳을 찾는 것도,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지만, 지하철을 내려서 만난 호주의 하늘, 시드니는 정말,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기에 충분했어. Castle Hill로 가는 버스 안에서도, 외국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는 내가 나로 느껴지지 않았고, 마치 텔레비전을 생중계로 보는 듯한 느낌이었어. 창가에 비친 호주의 하늘은 얼마나 높기만 한지.

도착하자마자 난 다시 누님에게 전화를 걸었고, 아저씨게서 날 데리러 나오셨어. 아저씨 얼굴은 잘 몰랐지만, 한국사람이 드문 곳이어서, 아저씨가 손짓하실 때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지. 누군가 아는 사람을 그 곳에서 만난다는건 정말, 정말이지 반가운 일이었어. 어저씨께서는 말수가 그리 많지 않으셨지만, 배려를 잘 해주셨고, 나는 집에서 짐을 풀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어. 가슴이 두근거리면서도, 피곤하긴 피곤했어.

짐을 좀 정리하고, 몇 시간 지났을까. 나영 누님께서 건너오셨어. 친구처럼 보이는 한 여자분을 데리고서 말이야. 알고보니 사촌뻘 되는 사람이었나봐. 마침 그 분도 미국에서 호주로 놀러온 상황이어서 나와 같이 Blue Mountain에 같이가면 되겠구나 하면서 데리고 오신 것 같았어. 생긴건 동양적인데 한국말은 전혀 못하는게, 물어보니 일본분이 아버지라고 하시고, 한국 어머니, 그런데 한국말과 일본말은 거의 배우지 않았대. 영어는 엄청 잘하더라구. 그래서 그렇게 우리는 차를 타고서 Blue Mountain으로 향했어. 그간 못했던 이야기들을 차안에서 나누고. 멋진 광경도 감상하면서 말이야. 거리는 생각보다 멀었어. 땅떵어리가 그렇게 넓은데 당연하겠지만, 차에서 안자야지, 안자야지 하면서도 졸리더라. 한 시간 반쯤 지났을까? 그렇게 우리는 도착했고, 우선은 맛있는 점심을 먹었어. 햄버거를 시켜주셨는데 정말이지 맛있었어. 배고픈 시간이기도 했지만, 맛이 기가막힌게 지금도 생각이 나는걸?

적당히 배를 채우고서 다시금 목적지로 향했어. 이 당시만해도 Blue Mountain이 관광 명소 중 하나인지 몰랐는데, 알고 보니 다들 한 번씩 찾아가는 그런 코스 중 하나였어. 거기서 나랑 호주 초보인 그 친구 둘이서 이상한 기차같은 것도 같이 타고, 하이킹 하는 짧은 코스도 다니면서 간단간단하게 이야기도 나누었는데, 정말 영어의 중요성을 느끼게 해줬어. 말이 체 끝나지도 않았는데 받아침을 당해본 사람의 느낌이랄까. 그렇게 몇 시간을 보낸 뒤에 우리는 다시 집 근처로 돌아왔고, 한국 음식점에서 식사를 했어. 거의 한인 타운같이 한국 사람이 많았던 곳으로 기억해. 한국 사람들끼리 엄청 어울려다니고, 한국말을 쓰고, 한인 타운 사람들이야 당연지사겠지만, 유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까지 그러고 다니는 모습을 보니, 나는 한국사람들하고 저렇게는 어울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어. 한국 식당에서 말이야.


Myron's Australia - 2010. 12. 05 - 서울 Myron's Australia

2009. 12. 05. 토요일. 출국하는 날, 아침 6시, 인천공항.

 

이별하기 좋은 날씨야. 비가 주르륵 내리네. 군대 가기 전에 느껴지는 그런 착잡한 느낌에 비까지 내리니 내 가슴이 뭔가 적셔지는 느낌이야. 새벽에 오는 공항버스 놓치지 않으려고, 알람을 맞춰났는데, 그런거 있잖아. 극도의 예민함으로 말하지 않아도 잠에서 깨는, 수능 당일날 새벽에 잠에서 깨는 것 같이. 사실 귀국한 지금 이 시점에서는 웃기지도 않지만, 군대에 수능까지 한꺼번에 그 압박감이 밀려온다는게, 한국을 벗어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있어 하나의 큰 부담이었나봐. 그렇지. 부담이 아니 될 수는 없을꺼야. 아무 준비 없이 떠나는 여행이니 만큼, 준비도, 어떤걸 할지도, 큰 계획도 없이 무작정, 영어는 좀 늘겠지 하는 생각으로 가는거였으니 만큼말이야.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형의 몸부림에 잠에서 깨버렸어. 지난 1년 간, 정확히 말하면 인도에 다녀온 그 시점부터, 어찌보면 오랜 숙원사업 같은 해외 출국이 이제야 현실이 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 수능과 군대를 오간, 그 묵직한 기분은 유쾌하지도, 그렇다고 불쾌하지도 않은 그저 담담함이랄까. 만날만한 친구들은 다 만났고, 사실 그렇게 대수로운 일도 아닌데 말이야, 집앞까지 찾아온 녀석들도 있었고, 고맙다 친구야.

공항 버스를 타니, 그동안 지나왔던 그 길들도 낯설게만 느껴지는건, 모든이에게 시간은 지극히 공평하지 않다는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해. 잠깐 졸은 사이에 나를 맞이한건 인천이었고, 비는 어느정도 진정된 상태였어. 공항 안에서는 내가 앞서 걱정했던 것처럼 그렇게 헤멜 필요도 없이 JAL공항사의 보딩 패스하는 곳이 바로 눈에 띄였고, 남들처럼 태연한 척 줄을 서서, 내심 긴장한 채로 내 순서를 기다렸어. 별 탈 없이 수속을 마치려고 하는데, 비행기가 정원보다 많은 사람을 예약받잖어. 그래서 아침 비행기가 사람을 많이 태울 경우에, 오후 비행기로 날 실어다 준다는 말을 해서, 그 대신 나는 비즈니스 석으로 모셔다 준다는 말에 알겠다고 대답했지. 이거 완전 시작이 좋은거 아닌가? 그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내 호주의 삶이 담긴 일기는 이렇게 시작되는거야.

2시간의 비행 후,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어. 날씨는 한국과 다르게 맑았지. 짧은 비행 순간에 정말이지 출국하는구나 싶은 생각과, 이제는 정말 홀로서기를 시작해야겠다는 그런 묽은 다짐, 영어로 생각과 마인드를 바꾸어야겠다는 자세 따위가 뇌까리에 뒤엉켰어. 몇 일 뒤부터는 정말이지 영어로 일기를 쓰고 있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까지 말이야. 물론 내일부터 당장 영어로 시작했지만 서도.

나리타는 생각보다 작은 국제공항이었어. 물론 돌아다니지는 않았으니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인천에 비하면 면세점 스케일이 확실히 차이가 났어. 비교도 안 될 정도더라구.

프렌즈를 몇 편 보면서, 킬링 타임을 시작하는데, 문득 드는 생각이 뭔지 알어? 외.롭.다. 도착에 대한 걱정은 생각보다 덜하고, 출국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은 역시 기우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했어. 어찌 되었건 내가 할 일은 당장에, 다음 비행기를 타는 거였고, 그 비행기를 타고 한참을 날아가야된다는 그 생각밖에는 없었던거야. 이렇게 시간을 죽이다 보니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고, 네이버에서 찾아봤던, 일본 공항 식당에서 우동을 한 그릇 사먹고, 옆에 앉은 외국인처럼 책을 읽고, 때론 졸고 하다보니 이제는 슬슬 공항 그 큰 유리창에 빗방울이 묻어나기 시작했어. 어? 고개를 들면 이내 또 그쳐있는 그런 비. 비행기에서 나의 8-9개월의 호주 생활을 생각해봤는데, 적어도 석 달 가량은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겠다는 거야. 그런 결론이었어. 여유가 없으면, 힘든 생활의 시작이 될테니까. 내 마인드는 이런거였어. 아까 친구와 채팅을 하는데, 내가 인턴할 당시, 내가 내친구한테 이런말을 했다고 하는군. 역시 사람은 여유가 있어야 한다며...


1 2 3 4